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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활 제2주일, ‘하느님의 자비 주일’의 강론

<부활 제2주일, ‘하느님의 자비 주일’의 강론 말씀>

오늘은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2000년 대희년을 맞이하여 부활 제2주일을 하느님의 자비 주일로 제정하신 날입니다.

부활 제2주일인 오늘 복음말씀은 토마스 사도의 이야기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평화를 빌어주셨는데 그 자리에 있지 않았던 토마스는 “내 손으로 그분의 못 자국에 손가락을 넣어보고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보지 않고서는 믿지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일주일 후에 예수님께서는 다시 나타나셔서 토마스에게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시면서 “토마스야,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말에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백번 듣는 것이 한번 눈으로 보는 것보다 못하다는 말입니다.
보아야 믿겠다는 토마스 사도의 말처럼 사람들은 눈으로 본 것을 인정하고 믿게 됩니다. 그 가운데 인간에게 가장 절실한 갈망은 아마 하느님을 직접 뵙고 싶어 하는 것 직접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우리 삶에 온갖 의문투성이와 고통 속에서 하느님을 직접 뵙고 묻고 싶어 합니다. 그분과 얼굴을 맞대고 풀리지 않는 것에 대한 답을 듣고 삶 속에 드리워진 어둠과 혼돈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삶, 진실한 삶을 살고자 하는 것은 모든 인간의 간절한 바람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러나 삶은 우리가 알고 있듯이 1, 2, 3, 4 … … 999999, 1000000이 아니라는 것을 살면서 뼈저리게 느낍니다. 혁명 같고 동시대이고 지속적인 것 같은 우리 삶에 무수히 많은 축이 겹쳐지고 무질서한 것 같으면서도 나름 의미가 있고 깊이가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지금 눈으로 같이 보고 있지만 사실 각자의 삶은 저마다 또 하나의 세계가 그 안에서 펼쳐지고 있습니다.
보고 있어도 보고 있지만 안다고 말할 수도 없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겉으로 보여 지는 것은 어쩌면 거짓인지도 모릅니다. 지금 아무 걱정 없이 편안해 보이지만 그 사람 속에는 온갖 근심과 걱정이 꽉 차 있을지도 모릅니다. 겉으로 보기에 허름해 보이지만 그 사람 안에 참된 자유를 누릴 지도 모릅니다. 본다고 해서 보고 있는 것이 아니고 보지 않다고 해서 모르는 것이 또한 아닌 것이 우리의 앎이고 보는 것입니다.  
책을 읽으면 책 속에 또 하나의 무한한 세계가 펼쳐집니다. 일상에 전부인 것 같아도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면 새 세계가 있습니다. 사진도 취미로 갖기 시작해도 무수한 세계가 또 펼쳐지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음악도 그림의 세계도 그렇습니다. 하물며 한 사람의 인생이야 오죽하겠습니다. 그래서 본다고 다 아는 것도 아니고 안다고 해서 다 믿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은 오히려 믿고 싶은 것을 믿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 모른다고 해서 믿을 수 없는 것도 아닙니다. 하느님은 당신을 뵙기를 갈망하는 사람들에게 당신을 알 수 있게 해주십니다. 성경 말씀을 통해서 사람들의 체험을 통해서 인간의 양심과 대자연의 섭리 속에서, 세상의 창조물을 통해서 우리로 하여금 당신을 알 수 있게 해주십니다.
그래서 하느님을 본다는 것은 눈으로 보는 것보다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하느님의 업적을 통해 우리가 깨달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뵙고 싶어 하면서도 우리의 삶이 하느님께로 향하고 있지 않다면 아무리 보고 싶어 해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신데 우리가 사랑과 동떨어진 삶을 살면서 하느님을 어떻게 만나 뵈올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을 안다고 하는 것은 이처럼 하느님의 방식대로 힘차게 살아 숨을 쉬고 움직이며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하느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눈으로 보는 하느님, 만들어진 하느님은 어쩌면 거짓일지도 모릅니다.

사람에게는 네 가지의 눈이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눈으로 보는 육안(肉眼)이고, 다음은 머리로 깨닫는 뇌안(腦眼)이며, 또 하나는 마음으로 깨닫는 심안(心眼), 그리고 영적인 자각을 깨닫는 영적인 눈인 영안(靈眼)이 있다고 합니다. 삶의 순간순간마다 그때에 맞는 눈을 뜰 줄 알아야 삶을 깊이 있게 들어갈 수 있습니다. 네 개의 눈 중에서 어떤 눈으로 사물과 세상을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과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이 달라집니다. 영적인 눈은 모든 사물 안에 담겨진 본질을 또 하느님의 섭리를 볼 수 있게 해줍니다. 영적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은 그래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까지 꿰뚫어 볼 수 있는 안목이 생기는 것입니다. 영적인 눈으로 봐야 참된 진리를 볼 수 있고 참된 진리 속에서 하느님을 만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에 예수님께서 당신은 찾는 이에게 ‘와서 보아라’ 하신 말씀도 이런 맥락에서 하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행적과 말씀은 우리에게 영적인 눈을 뜨이게 해서 살아계신 하느님을 만날 수 있도록 초대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토마스가 그 분의 못자국과 옆구리에 손을 넣어보지 않고서는 믿지 못하겠다고 한 말은 토마스의 불신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보아야만 믿을 수 있겠다’는 모든 인간의 모순과 허상을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 심각한 것은 보고서도 믿지 못하는 것일 겁니다.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왕자》에서 여우는 어린 왕자에게 삶의 비밀을 가르쳐줍니다. 인생에는 마음의 눈으로 봐야만 잘 볼 수 있는 것이 있고,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이유는 사람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해서 덜 중요한 것만을 좇아 찾고 있기 때문에 정작 중요한 것은 보지 못하고 덜 중요한 것만을 보려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그 분을 뵙는 일은, 단순히 물리적이거나 이념적인 것을 통해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마음에서 이루어집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세상을 이긴 예수님을 만나 뵈올 수 있고,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삶의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오늘은 자비의 주일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하느님의 자비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현대 사고방식은 과거보다 하느님의 자비가 들어갈 틈이 없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자비가 보이지 않고 사라지는 세상은 역설적으로 하느님의 자비를 필요로 하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 남을 죽여야만 하는 이런 무한경쟁의 신자유주의 체재 안에서 우리도 무자비해져 가고 있습니다.
오늘날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이 세상의 방식이 인간을 점점 비인간화하고 있다는 생각을 가끔 하게 됩니다. 요즘 뉴스에 아이들을 학대하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하는지, 또 한 뉴스에서 요즘 학교 폭력의 문제가 옛날에도 있었겠지만 전 세계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고 했습니다. 어린 학생들에게 치욕적인 헤어나지 못하는 고통으로 다가가는지, 또 자존심이 상했다고 해서 무자비한 행동을 할 수 있는지.
우리 사는 세상이 무자비해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인간은 자비롭지 못해도 하느님은 자비롭고 하느님이 자비로움의 본질이기에 인간은 더욱 하느님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배제할수록 세상이 더욱 무자비해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하느님의 자비를 더욱더 찾고 하느님의 자비를 구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하느님과 인간과의 관계는 하느님 자비의 역사입니다. 하느님께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하느님의 자비가 무엇인지 드러나게 되고 그로인해 우리의 삶이 더욱 자비롭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오늘 부활 제 2주일을 지내면서 부활하신 주님과의 만남은 하느님이 자비하시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부활이 무엇입니까. 새 생명에 대한 희망이 아닙니까. 하느님의 자비가 우리를 살린다는 것입니다. 죽음으로 치닫는 것을 이기고 주님의 부활이고 주님의 부활을 믿는 우리의 믿음입니다. 오늘 새 생명이신 부활을 믿는 우리의 믿음으로, 부활하신 주님을 간직하고 우리의 삶이 우리의 세상이 하느님 안에서 더욱 자비롭기를 기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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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4. 11
부활 제2주일 교중 강론 말씀의 채록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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