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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활 제2주간 목요일 강론 / 요한 3,31-36

부활 제2주간 목요일의 강론말씀 / 요한 3,31-36

심리학 용어 중에 자기 확신 또는 자기 신뢰라는 말이 있습니다. self-confidence라고 합니다.  
미국의 심리학회(APA)에서 나온 사전을 찾아보니 ‘자기 능력이나 소질이나 판단을 믿는 것’. 거기에 주(注)를 달았는데 ‘심리학의 최종 목적이거나 지향하는 바가 자기 확신을 갖게 하는 것’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잘 보이지는 않지만 제일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자기 확신’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자신을 믿지 않고는 남을 믿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무엇을 자신 있게 할 수가 없습니다.
자기 확신의 두 가지 요소 중에 하나는 자기 평가 또 하나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개념 정리입니다. 자기 확신을 얻기 위해서는 나는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명확한 상(像)이 내 안에 자리 잡아야 하고, 동시에 그런 내가 어떤 재능이나 역할이나 과제를 어떻게 수행하는가에 대한 평가가 곁들여질 때 자기 확신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self-confidence, 자기 확신은 부모가 자녀를 키우는 데 있어 제일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먹여주고 입혀주고 돈 주고 그런 것도 중요하지만 해야 할 일은, 스스로를 믿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확신은 일차적으로 부모와의 관계에서 형성됩니다. 아기가 걷기 시작하면 넘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보다 호기심이 더 커서 넘어질지라도 호기심의 대상으로 나아갑니다. 그런데 절대로 넘지 못하는 범위가 있는데  언제냐 하면, 뒤를 돌아볼 때입니다. 자녀를 키우셨으니까 기억이 나실 겁니다. 아기가 아장아장 걷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뒤를 돌아다봅니다. 뒤에 엄마가 있으면 앞으로 갑니다. 엄마가 없으면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합니다. 심리적으로 거기가 저항선인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와 자녀간의 신뢰관계가 잘 형성될 때 인간은 자신에 대한 확신과 일을 함에 있어서도 자신을 믿을 수 있게 됩니다. 부모가 자녀를 돌보는 데 있어 똥 싸면 치워주고 열이 나면 열을 식혀주는 것은 아주 본질적이고 기본적인 것이지요. 그런데 좀 더 크기 시작해서 걷기 시작하면 걷게 해주는 것을 싫어하고 본인이 걸어가기 시작하고, 친구를 사귀기 시작하면 부모 외 친구와의 관계에 치중을 하게 됩니다. 어렸을 때는 부모가 일차적이고 즉각적이지만 조금 서서히 지나면서 부모가 물러나야 합니다. 그런데 부모가 너무 물러나도 안 됩니다. 자녀가 가다가 뒤를 쳐다 볼 때 그런 관계가 잘 되어야 하는 것이 자녀를 키우는데 있어 중요합니다. 지나치게 간섭하면 답답해하고 그렇다고 방임하면 아이는 올곧게 자라지 못하고 제멋대로 자기 영향 안에서 자라게 됩니다. 때로는 개입하지만 때로는 물러나기도 하면서 울타리를 그때그때 잘 쳐주는 것입니다. 점점 크면 울타리도 넓어지고 그러다 울타리가 필요 없어질 정도가 될 때 자기 혼자 부모가 개입하지 않아도 스스로 자기의 삶을 책임지고 살아갈 수 있게끔 나도 믿고 본인도 자신을 믿을 때 인간은 스스로 살아가게 되지 않는가 합니다.
영어 단어에 parenting이 있어요. 우리말로 ‘부모 되기’라고 하겠지요. 옛날에는 ‘부모 되기’는 공동체에서 마을에서 남이 하는 것 보면서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거의 아파트 생활이라 옆집에서 애를 키우면서 무슨 일이 있는지, 우리 아이가 왜 아픈지 모르기 때문에 ‘부모 되기’란 단순히 밥 먹이고 똥 싸면 기저귀 갈아주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그래서 부모역할을 배워야 할 필요가 있고 가르쳐줘야 할 필요가 생기고 있습니다.
미국 심리학회에서 말한 것처럼 심리학의 최종 목적이나 지향하는 바가 인간이 자신을 잘 믿을 수 있게끔 해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라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아버지께서 나에게 모든 것을 다 맡기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지상에서 당신의 사명을 수행하심에 있어, 아버지와의 관계에 깊은 확신이 있었기에 무엇보다 소중한 생명을 바치는 것에도 물러남이 없이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렇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은 아버지와 아드님과의 관계에서 그런 깊은 신뢰가 바탕이 되어 이루어졌듯이 당신과 당신을 따르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깊은 신뢰 속에 아버지의 사랑에 자녀들도 참여하게끔 하는 것 그것이 궁극적인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에서 그런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하듯이 우리 믿음에 있어서도 예수 그리스도와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깊은 신뢰처럼 우리도 하느님 안에 각인되어 있고 나라는 존재가 하느님의 섭리 안에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아니라 믿고 받아들이는 것 이게 우리 신앙의 궁극적인 목적이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오늘 사도행전을 보면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사도들을 죽이려고 하였다.’고 합니다.
사실 ‘산헤드린(sanhedrin 예루살렘 의회)’ 사람들이 예수님을 죽였던 사람들이고, 그것이 두려워서 도망 다녔던 제자들입니다. 얼마 전에도 말씀드렸던 ‘산헤드린’ 사람들은 율법과 히브리어를 잘 아는 즉 학습된 사람이고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사람인데 이쪽은 어부이고 무지렁이 같은 군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사람들이 율법을 거론하고 하느님 말씀을 얘기하면서 우리가 예수를 죽였다고 한 것을 못 받아들일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매질하고 다시는 그 사람 이름으로 설교하지 말라고 얘기했어요. 오늘 보면 ‘산헤드린’은 예수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기를 피합니다. ‘그 사람의 피에 대한 책임을 우리에게 씌우려고 하고 있소.’하면서 베드로와 사도들을 힐난합니다.
여기서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베드로와 사도들의 입장입니다. “여러분들이 매달아 죽인 예수님을 하느님께서 다시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영도자와 구원자로 삼아서 당신 오른쪽에 들어 올리시고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죄를 용서받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일의 증인입니다.” 라고 말하는데 그 뉘앙스는 사실 말로서 사도들을 죽이려고 했다가 아니라 실제로 죽이고 싶은 마음이 불쑥 솟아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는 겁니다. 중요한 것은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와서 최고 지도자들인 그들의 터전에서 갈릴래아에서도 아니고 그들이 벌려놓은 판에 들어가서 당신들이 죽인 예수가 바로 하느님이 그분의 손을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신 분이고, 그 분을 죽인 당신들은 회개하시오 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은 깊은 확신이 있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서는 그것은 성령이 사도들을 휘감아서 사도들이 그 확신을 갖게 되었다고 얘기합니다. 사실 말로는 하지만 그 상황을 들여다보고 깊이 들여다보면 사도들이 가지고 있는 자기 확신이 얼마나 큰 것인지, 그것이 교회의 에너지이고 힘이다라는 사실을 느끼게 됩니다.
이 힘은 산헤드린 사람들의 의식을 바꾸게 됩니다. 사도들이 가지고 있던 예수님에 대한 흔들림 없는 생각 속에서 성령이 사도들에게 내리고 사도들은 예수님에 대한 아주 깊은 확신을 가지고, 그 확신은 죽음을 능가하는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깊은 확신에서 나올 수 있다는 겁니다.  

끝으로 두 가지를 말씀 드리면,
나는 나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고 나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나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있는가입니다. 또 하나는 나와 하느님의 관계에서 내가 하느님 안에 받아들여지고 하느님을 기꺼이 따르고 신뢰하고 있는가를 묵상하게 됩니다.

채록, 류정호 테레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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